우유팩이 친환경 휴지로…밀크로드를 걷는 사람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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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이 친환경 휴지로…밀크로드를 걷는 사람들 [영상]

핵심요약

전남 순천 유익한상점, 종이팩 수거 캠페인 4년째
해마다 개인·식당·학교 참여↑지난해 종이팩 2t 모여
수거된 종이팩은 '부림제지'서 친환경 휴지로 재탄생
국내 수거율 27% 미만 수입 의존…시민들 동참 필요

캔과 유리병에 비해 수거가 잘 되지 않는 우유팩은 알고보면 아주 특별한 자원이다. 우유팩은 천연펄프 중에서도 가장 좋은 침엽수 펄프를 원료로 이용해 제조된다. 침엽수 펄프는 조직이 치밀하고 먼지가 덜 나기 때문에 우유팩의 코팅만 벗기면 곧바로 휴지의 원료가 된다. 우유팩의 재활용률이 높아지면 나무를 베지 않고도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휴지가 만들 수 있다. 우유팩의 이러한 가치를 아는 이들은 오늘도 다 마신 우유팩을 깨끗이 씻고 말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폐우유팩이 머물다 가는 곳 '종이팩 정거장'  

전남 순천역 부근에는 친환경 화장지로 재탄생하기 위해 우유팩이 거쳐가는 곳이 있다. 친환경 제품 판매숍 유익한상점이 운영하는 '종이팩 정거장'이다.

유익한상점 양진아 대표(43)는 종이팩이 제대로 재활용이 되지 않아 외국에서 수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종이팩 모으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종이팩으로 되살림 휴지를 만드는 '부림제지'를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종이팩 모으기에 나섰다.

유익한상점이 종이팩 정거장을 운영한지는 4년째.

첫 달에는 96개를 보냈다. 지인 찬스로 주변 식당, 카페 등이 참여한 덕분이었다. 6개월째에는 1000ml 우유팩이 1000개 정도 모였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3년 차에는 1t용달 트럭에 폐우유팩을 실어 날랐다. 양 대표는 "3년 차에 우유팩 갯수를 일일이 셀 수 없어 무게를 쟤기 시작했다"며 "저울을 산 날이 우유팩 수거 캠페인을 시작하고 두번째로 기뻤던 날"이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1~2만 개까지 모였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갈수록 쌓여가는 우유팩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4년 차인 올해, 유익한상점에서 열 걸음 떨어진 빈 창고를 개조해 아예 종이팩 전용창고를 만들었다. 누구나 시시때때로 드나들 수 있는 '종이팩 정거장'이 생긴 것이다.

유익한상점은 SNS에 시민들이 보낸 우유팩 양을 공개하고 있다. 시민들 모두 씻고 펼치고 말리는 과정까지 동참준 덕분이다. 지난해 종이팩 정거장에 모인 우유팩은 무려 2t. 소나무 30그루와 견줄 양이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20년 전라남도가 주관한 사회혁신공모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남 순천에서 종이팩정거장을 운영하는 유익한상점 전남 순천에서 종이팩정거장을 운영하는 유익한상점 

우유팩 수거에 진심인 사람들 

"출근하기 전에 놓고 갑니다"

종이팩 정거장에는 유익한 상점 옆 오피스텔에 사는 청년도, 아이를 키우며 우유 소비가 많은 엄마도 깨끗이 씻어 싹둑싹둑 잘라 모은 우유팩들을 놓고 간다.

참여자 중에는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웠던 지난 3년간 베란다에 꼬박 모아 놓은 우유팩을 고스란히 정거장에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커플은 종이팩을 수거한다는 소식에 '우리도 한번 해보자' 며 10개월을 모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우유팩 10개 이상을 엄마와 함께 모아오기도 했다. 이 학생은 "내가 지구에 더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꼭 가져다 줘야 한다"며 우유팩을 버리려는 엄마를 설득해 방학 동안 모았다고 했다.

종이팩 정거장은 식당·카페  참여가 90% 가까이 된다. 개인보다 우유팩 소비가 훨씬 많은 상점의 참여로 해마다 종이팩 수거율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순천시 왕조2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위소라(43)씨는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우유팩과 테프라팩을 씻어서 말렸다가 한 달에 한번 평균 100~150개 씩 전달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유익한 상점이 선정한 '잘모아상' 을 받기도 했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 위 씨는 "씻어서 가져다 주면 좋은 일에 사용되기 때문에 습관처럼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한다"며 "식당 손님 중에도 벽에 걸려있는 '잘모아상'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분이 있어 유익한 상점을 소개했다"고 전했다.

우유 소비가 많은 초·중·고등학교의 참여가 느는 일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달에도 순천 철도코레일 유치원, 삼산초, 인안초, 좌야초, 송산초, 광양옥룡북초, 구례 중앙초, 순천 별량중, 보성여자중학교가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기업인 무인양품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국내 30개의 무인양품 매장 중 식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세 곳과 본사 한 곳이 매달 꾸준히 종이팩 정거장으로 우유팩을 보낸다.

양 대표는 "돈도 안되는 일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사람들이 준비돼 있었나, 다만 가지고 이렇게 편히 가져올 곳이 없었던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며 "30년 정도 더 하면 우리 일상에 서 그냥, 누구나, 하는 일이 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대표는 "지역에서 모아진 우유팩이 지역민이 사용하는 휴지가 되도록 수거에서 휴지 생산까지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목표"라면서 "민간의 영역이 아닌 지자체와 같은 행정에서도 같이 고민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유팩으로 만든 되살림 휴지제품. 부림제지 우유팩으로 만든 되살림 휴지제품. 부림제지 

친환경 휴지로 재탄생…국내 수거율은 아직 미비

풍요로운 숲이라는 뜻을 가진 부림제지는 국내 우유갑 되살림 휴지 1세대 생산자이다. 고집스럽게 35년간 친환경 휴지만 만들어내는 유일한 곳이다.

유익한상점 등 전국의 종이팩 정거장을 통해 수거된 우유팩은 비닐과 종이를 분리된다. 비닐은 벗기고, 종이와 물은 배관을 통해 밑으로 빠지며 인쇄된 바깥과 안쪽 비닐이 모두 망에 걸러진다. 그다음 펄프화된 화장지 원료를 물에서 건져내 화장지 원단(초지)를 만든다. 부림제지에서는 이 원단으로 절지선, 엠보싱을 만들고, 건조와 제단 과정을 거쳐 완제품을 탄생시킨다.

부림제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버려지는 최고급 침엽수 버진 펄트로 만들어진 많은 우유팩을 되살림 해 열대 우림의 파괴와 탄소가스의 발생량을 줄이고 있다. 우유팩으로 만들어진 재생지는 약 1kg의 펄프를 아끼고, 30년생 나무 1/60그루를 보존할 수 있다. 1/50그루 키친타올은 200ml 우유팩 약 130개를 재활용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약 1.2kg의 펄프를 아끼고 30년생 나무 1/50그루를 보존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수거율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일본의 우유팩 수거율이 50%인데 반해, 한국은 그 절반 수준인 27% 미만으로 알려졌다.

우유팩 수거가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1차 분리수거가 안 되고 분리 배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부족으로 매년 약 4만 5천 통 이상의 종이팩이 폐지에 혼입되거나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림제지 윤우석 전무는 우유팩을 비롯한 종이팩 수거율이 미비한 안타까운 점을 언급하며 친환경 재활용 생태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비가 일어나면 소비를 통한 수거가 이뤄지고 수거된 물품이 다시 다른 재활용 제품으로 탄생하는 '순환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친환경 재활용 물품 소비율이 높아지면 이같은 순환구조는 뒤따라 오는 것이다.

친환경 재활용 제품에 대한 홍보도 중요한 점으로 꼽힌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이 친환경 재활용 제품인지 몰라서 못 쓸 수도 있고, 재활용 제품을 마치 쓰레기로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재활용이나 재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윤 전무는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재활용 제품들은 위생용품 관리법에 따라서 안전하게 만들어진다"며 "망설임 없이 친환경 재활용 제품을 사서 쓸 수 있도록 회사의 신뢰도나 인지도를 높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활용 생태계 순환 과정 중 혈관 역할을 하는 재활용 사업자분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윤 전무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거율이 높아져야 한다"며 깨끗하게 헹궈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헹구고 펼치고 말리고 한번 묶어준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생활 속에서 녹여내는 방식으로 수거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 유튜브 콘텐츠 <쓰레빠>와 관련 기사는 전라남도 동부지역본부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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