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돌산읍에 소재한 해수욕장에서 30분간 쓰레기를 수거해봤다. 박사라 기자. 쓰레기 '줍줍' 위해 찾아간 여수바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지난 12일에 찾은 전남 여수시 무슬목 해수욕장.
무실목, 무술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오목한 형태의 해안가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크지 않은 곳이어서 친구나 가족 단위로 즐겨찾기 좋은 명소다.
아직 이른 휴가철인데다가 비 소식이 예고된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무슬목 일대는 한적했고,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만이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을 알리고 있었다.
모처럼 마주하는 바다 풍경에 만사를 제치고 싶었지만, 애당초 해양 쓰레기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찾은 곳이어서 쓰레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해수욕장으로 출발하기 전, 동네 오래된 철물점에 들러 두툼한 목장갑과 마대자루 두 장, 그리고 긴 집게를 구입했다. 이른 바 '장비빨', '템발'을 세우기 위해 안전과 편의성 등을 고려해 엄선한 도구들이었다.
내심 의욕이 앞서 장비들만 거창하게 준비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됐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우였다.
해변가 일대를 서성인지 얼마 되지 않아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갈과 모래 사이로 과자 비닐봉지, 즉석식품 용기, 다 쓴 폭죽에 낚시바늘을 비롯해 보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려지는 괴상한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버려져 있었다.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었던 마대자루 한 장은 쓰레기를 주운지 5분 만에 가득 찼고, 나머지 25분 동안에도 다른 마대자루 한 장을 다 채우고도 넘칠 양의 쓰레기가 모아졌다.
곧 석양이 드리워질 해변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쓰레기 먹는 똑똑한 자판기, 페트병·캔 10원씩 지급
수거한 쓰레기 전부를 들고 여수시 해양공원을 찾았다. 페트병과 캔을 적립금으로 돌려주는 AI 순환자원회수로봇 자판기가 설치된 곳이기 때문이다.
자판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먼저 자판기와 연동된 앱을 설치했어야 했다.
자판기 위치는 해당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여수에는 13곳에 운영되고 있었다. 자판기 한 대당 일일 수거량을 다 채웠거나, 매주 일요일과 법정공휴일인 경우에는 자판기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자판기 상태를 확인했어야 했다.
AI 순환자원회수로봇 자판기라고 해서 모든 쓰레기를 다 수거하는 건 아니었다. 라벨지가 제거된 투명한 페트병과 음료수 캔만 1인당 하루 100개까지 넣을 수 있었다. 오염되거나 구겨진 페트병은 자판기가 거부하거나 포인트 적립이 불가했다. 수거된 자원은 지역 재활용센터 등을 거쳐 자원순환에 활용된다.
무슬목 해변에서 30분 동안 주운 쓰레기 중 일부를 추려서 적립한 금액은 230원. 개당 10원씩 23개만 포인트 적립이 가능했다. 함께 주워온 소주병도 공병보증금제도를 이용하면 100원을 추가할 수 있어서 모두 330원을 번 셈이었다. 포인트는 2000점 이상부터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한 시민이 투명 페트병을 가득 들고 집 근처 AI 자원순환로봇 자판기에 찾았다. 박사라 기자. 전남도 일부 16개 시군, 해양 쓰레기 연간 3만여 톤 발생
지금까지 로봇 자판기를 이용한 여수 시민은 모두 2만 5920명. 2019년부터 수거된 페트병은 646만 9956개, 캔은 432만 2501개다. 시민들에겐 1억 8천 만원 상당이 포인트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해양공원에서 만난 60대 주민도 자판기를 이용하기 위해 투명 페트병을 몽땅 모아왔다. 지금까지 적립한 포인트는 47600점. "자판기가 생긴 이후 포인트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해 계속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자주 해본 일인 듯, 페트병 라벨지를 손쉽게 제거할 면도용 칼까지 챙겨올 정도였다.
전남도가 밝힌 22개 시군 중 16개 지역에서 발생한 해양 쓰레기는 2021년 한 해 기준 3만 3534여 톤. 대개 해양쓰레기는 바다 수면 위로 부유한 쓰레기와 침전 쓰레기, 해변가 쓰레기를 지칭하지만 일부 지역에 따라 해안가 쓰레기를 생활 쓰레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1㎏을 재활용하면 1㎏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저감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휴가철을 맞아 바닷가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때, 쓰레기 발생 자체를 억제하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쓰레기를 어디로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절실한 시기다.
※ 유튜브 콘텐츠 <쓰레빠>와 관련 기사는 전라남도 동부지역본부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