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⑬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⑭ "꽃을 보니까, 지켜주고 싶어졌어요"…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⑮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가요 우리바다"…바다를 살리는 시민들 ⑯ 차 없이도 괜찮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⑰ 김밥을 말며 아이들이 배운 건? '생태감수성' ⑱ "기후위기, 동물도 아픕니다"… 동물권 다룬 기후영화제 열린다 (계속) |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기후생명영화제' 포스터. 전남녹색연합 제공 이른 장마가 스치듯 지나가더니 곧바로 한증막 같은 더위가 이어졌고, 이번엔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가 광주·전남을 덮쳤다.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반복되는 가운데, 그 안에 감춰진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작은 영화제가 전남 동부권에서 열린다.
'기후생명영화제'는 전남녹색연합이 주최해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새내기 활동가 윤두나 씨가 총괄기획을 맡았다. 평소 동물과 생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기후위기를 시민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금강을 지키는 시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연스럽게 이번 영화제의 방향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동물권과 생태권'이다. 기후위기 담론이 대개 인간 중심으로만 흐르는 현실에서, 말 없는 생명들이 겪는 고통과 그들의 회복력에도 함께 주목해보고자 했다. 야생동물, 습지, 강과 같은 존재들이 우리 곁에서 어떤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지를 통해, 인간 역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다.
상영작은 총 세 편. 각각 생명과 자연,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시선을 확장한다.
첫 번째 작품은 임기웅 감독의 다큐멘터리 <야생동물 통제구역>(53분)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을 둘러싼 국가 정책과 생태계의 현실을 고요히 비추며, 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놓인 통제와 권력의 문제를 짚는다. 이 작품은 7월 24일 순천 저전나눔터에서 상영되며, 감독과의 대화(GV)도 마련돼 있다.
두 번째는 독일 애니메이션 <플로우>(감독 가브리엘 헬러-로이스너, 68분)다. 사람이 사라진 지구에서 고양이, 물고기, 제비 등 동물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로, 연령이나 언어에 상관없이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시적인 이미지와 음악이 어우러져 생명의 다양성과 공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플로우>는 8월 7일 광양 YMCA 다목적실과 8월 14일 광양 예담창고에서 상영된다.
마지막은 대전충남녹색연합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38분)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이 겪은 변화와 이를 되돌리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자연을 회복시키려는 다양한 실천의 장면들 속에서, 지역 기후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작품은 8월 21일 광양 예담창고에서 상영된다.
소규모 영화제지만 각 상영작은 활동가들의 진심 어린 고민에서 출발했다. 윤 활동가는 "동물이나 생태 이야기는 어린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라,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첫걸음으로 좋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꺼비 보호 운동이나 습지 복원 활동 등을 지역에서 이어오며, 말 없는 생명들의 존재와 권리를 직접 체감해온 경험이 이번 영화제 기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기후생명영화제'를 준비한 전남녹색연합 관계자들. 오른쪽부터 박수완 사무처장, 윤두나 활동가, 박미선 팀장. 박사라 기자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지만은 않았다.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처럼 시민 접근성이 높은 공간에는 '지자체 주관 행사가 아니다'는 이유로 포스터 하나 붙이기 어려웠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이용이 제한되는 공공공간도 많아, 장소 섭외가 쉽지 않았다. 윤 활동가는 "시민 공간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시민사회가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꼈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한 시민들의 반응은 오히려 따뜻하고 힘이 됐다. 포스터를 붙이러 갔을 때 "이런 걸 하냐"며 먼저 홍보를 도와주거나, 상영 공간을 기꺼이 내어준 이들도 있었다.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영화제의 메시지에 공감이 천천히 번져가고 있다. 동시에 이는 기후위기를 피부로 체감하는 시민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다소 씁쓸한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후생명영화제는 오는 9월 예정된 '기후위기 대행진'을 앞둔 작은 워밍업이자, 시민과 기후운동을 가깝게 잇는 통로다.
모든 상영은 무료로 진행된다. GV가 없는 날에도 활동가들이 상영 공간에 머물며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감상을 나눌 예정이다. 영화가 끝난 뒤 떠오른 생각이나 질문을 누구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윤 활동가는 "돈을 받는 순간, 이 자리가 누구에겐 '올 수 없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후위기를 이야기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요"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영화제를 통해 '동물 통제구역은 정말 동물을 위한 걸까?' 같은 조용한 질문 하나쯤은, 이 여름 마음속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