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여행자' 임영신 작가. 임영신 작가 제공 "검색어 하나만 바꿔도, 여행의 경로는 달라집니다."전쟁과 분쟁의 현장을 기록해온 평화활동가이자, 지금은 지역과 공존하는 '기후 여행자'로 활동 중인 임영신 작가의 말이다.
지난달 10일, 전남 순천 책방 '서성이다'에서 열린 '기후여행자' 북토크 이후, (관련기사 CBS 노컷뉴스 04. 25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 "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임 작가를 따로 만나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 방식, 도시의 방향성, 그리고 우리가 바꿔야 할 질문에 대해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기후위기 앞에서 여행만은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는 데 있어요. 그렇다면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그가 1년 가까이 자료를 모아 집필한 '기후여행자'에는 비행기, 호텔, 크루즈 등 다양한 여행 수단이 만들어내는 탄소 배출량이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을 통해 여행이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짚는다.
하지만 그는 죄책감보다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검색어 하나의 전환이 여행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순천 로컬 맛집', 지역 청년이 운영하는 카페, 지속 가능한 숙소를 검색하는 일. 작은 선택 하나가 여행의 동선을 바꿉니다."그는 이것이야말로 기후 여행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여행은 여전히 개인의 취향이지만, 그 안에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22년 속초 영랑호에서 열린 '여행자 평화행동'에 참여한 임영신 작가. 임영신 작가 제공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관광 지표 역시 변하고 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 사례를 들며, 관광객 수가 아닌 '재방문율'을 중심 지표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재방문하는 여행자는 서두르지 않고 오래 머무르며, 지역과의 접점을 넓힌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여수 사례를 빗대어 설명했다.
"여수를 처음 찾은 여행자는 여수 밤바다나 엑스포공원 같은 대표 명소를 먼저 갑니다. 하지만 두 번째 찾는 사람은 굳이 그곳들을 다시 갈 필요가 없죠. 자연스럽게 책방 골목이나 로컬 식당처럼 작지만 깊이 있는 공간을 찾게 됩니다. 이는 결국,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가 곧 여행자에게도 매력적인 도시가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임 작가는 이를 '사회적 장소감'이라 표현한다. 여러 사람이 경험을 공유한 장소일수록, 위협에 맞서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는 여행을 통한 인식 전환이 개인의 실천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와 정책을 연결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서울, 제주, 강릉 등 여러 지자체에서 공정관광 정책을 자문했고, 조례 제정 과정에도 직접 참여해 왔다.
"개인이 혼자 실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도시와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진짜 변화가 가능합니다."그는 관광을 '팔기 위한 도시'가 아닌 '살기 위한 도시'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주민의 삶을 지키는 방향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관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관광이 목적이 되는, 관광을 위한 도시는 없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가 여행하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기후 여행자'라는 말이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처음엔 생소하지만, 낯선 개념이 일상의 언어가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공정여행, 적정관광 같은 말도 그랬어요. 누군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그는 지금도 현장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을 실천 중이다. 숙소는 지역 주민의 추천으로 정하고, 의미 있는 공간들을 연결해 '희망의 지도(Map of Hope)'라는 플랫폼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공정여행 조례는 이미 전국 22개 도시로 확산됐으며, 그는 서울시 등 지방정부의 정책 자문에도 참여하고 있다.
"여행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깊은 여행을 원하게 됩니다. 그 방향이 기후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