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장수 동상 추진한 순천시, 계획 취소에도 논란 여전

日장수 동상 추진한 순천시, 계획 취소에도 논란 여전

전국적 비난 여론에 건립 계획 즉각 철회
市 "확정 아니었다" 해명…추진 과정과 '모순'
시민 정서 외면한 채 사업 서두른 흔적 나타나

순천시는 지난 7~8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중일 평화정원 내 평화광장을 채울 판석 1597개를 분양했다. 소서행장을 표현한 듯한 동상이 포스터 오른쪽 첫번째에 그려졌다. (사진=순천시 제공)

 

'한중일 평화정원 조성사업'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의 동상을 건립하는 내용이 포함돼 시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는 보도(본보 9월 17일) 직후 전남 순천시가 동상 설치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순천시는 "일본 장수 동상 설치를 확정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하며 철회 입장을 밝혔지만 여진은 여전하다.

일본 장수의 동상을 계획했다는 것 자체가 시민 정서에 맞지 않는데다 사업 추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순천시의 해명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분노하는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순천시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日장수 동상 건립 추진에 비난 들끓어…순천시 전면 취소

'한중일 평화정원 조성사업'은 동아시아 3국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아픔을 평화공존의 장으로 승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순천왜성과 옛 충무초 일원 13만㎡에 2025년까지 평화광장과 전적지, 교육체험관, 둘레길 등을 조성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초 순천시는 이 사업의 일환으로 정유재란 당시 3국을 대표하는 장수로 조선의 이순신, 권율 장군, 명나라의 진린과 등자룡, 왜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등 5명, 병사와 민중들의 군상(群像)을 세우려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동상이 평화정원에 세워진다는 소식은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순천시청은 조선 침략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 동상을 세금으로 만들지 말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시작되며 전국에서 비난이 들끓었다.

부정적 여론이 이어지자 일본 장군 포함 여부를 놓고 설문조사까지 진행하던 순천시는 설문을 마치기도 전에 3개국 장군 동상 설치 자체를 전면 취소했다.

◇계획 취소에도 맹비난 이어지는 이유는

순천시는 왜장 동상 건립 취소를 알리는 과정에서 '순천시가 일본 장수 동상 설치를 확정한 것처럼 SNS와 언론에 보도되고 오해와 논란이 가중된 것'이란 취지의 해명자료를 배포해 거짓해명 논란까지 일고 있다.

왜장이 포함된 동상 건립 사업을 추진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는 논란이 있기 전인 지난 4월 '한중일 평화정원 조성 동상 제작·설치 사업' 긴급 입찰공고를 진행했다.

제안요청서를 통해 일본 대표 장군으로 '소서행장'을 명시했으며 같은달 17일 사업설명회를 통해 입찰 희망업체를 대상으로 세부사항을 전달했다.

입찰에 참여한 4개 업체는 5월 4일 제안설명회를 통해 평가를 받았으며 시는 6월 1일 1순위 선정 업체와 8억 5500만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계약체결 이틀 후인 3일 착공에 들어가 10월 30일 준공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시는 계약 직후 총 계약금액의 69%에 달하는 5억 8653만 원을 선금으로 지급했다.

사업을 서둘러 추진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완성된 동상은 어떻게 쓰이나

시는 3국 동상 건립을 취소하고 무명의 민초들과 병사들의 군상만 평화정원에 설치할 예정이다.

왜장을 제외한 동상은 다른 장소에 설치하는 등 적절한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중국 측에서 기증한 동상을 비롯해 2명(이순신, 등자룡)은 사전에 제작이 완성된 상태였다.

이외에 조선의 권율과 중국 진린의 설계도 제작이 마무리 단계이며 고니시 유키나가 동상은 설계 단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순천시 관계자는 "사전에 제작된 동상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동상 제작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사업비의 차액분을 변경된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설명했다.

◇시민 정서·검증보다 사업 추진만 앞서

과거 울산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순천시를 향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2017년 12월 울산시 중구는 학성공원에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을 세우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울산시 중구는 "동상을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투 치열함의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 나라별 대표 장군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전국적인 비난을 받았다.

사업 추진에 앞서 타 지역 사례 조사 등 제대로 된 검증이 없었다는 비난이 순천시로 향하는 이유다.

또한 시는 6월 2~4일 4천여 만원 규모의 '한중일 평화정원 조성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 입찰을 진행했는데, 동상 설치 사업 계약이 직전(6월 1일)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애초 고니시 유키나가 동상 건립 여부는 이 조사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순천시민 A씨는 "왜장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는 것 자체가 전국적으로 창피한 일이다. 지난 7월에도 주민들의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그때라도 계획을 취소했으면 이런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계획 취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업 추진 과정에 있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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